대한민국 4대 대통령 "윤보선" 생가를 다녀오다. (윤보선 대통령의 역사적 내용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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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역사 탐방

대한민국 4대 대통령 "윤보선" 생가를 다녀오다. (윤보선 대통령의 역사적 내용 포함)


오늘의 역사
효블리입니다.



"윤보선 생가를 다녀오다"


도로명 : 충남 아산시 둔포면 해위길 52번길 29

지번 :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43-1


1960년 4.19혁명을 통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이후 독재가 마무리되고, 1년 뒤 5월발생한 쿠데타로 인하여 연달아 하야를 선언한 비운의 대통령 윤보선을 알고 있으신가요?


참조: 다음백과사전

역사를 좋아하거나 공부해 본 사람들들은 이미 있겠지만, 박정희가 주도한 5.16 쿠데타는 소소한 군사 정변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실 군사 3,500명으로 성공을 이루어 낸 반란이자 혁명으로 기록 되어 있지만, 당시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이 박정희 라인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박정희가 가는 노선을 확실하게 밀어줬기 때문에 총 3,500명의 군사로 성공했다고 선언하기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사실상 대규모의 군사를 움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참모총장의 입장에서도 현 국정의 무능함과 반복되는 침체속에서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면, 쿠데타가 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장면 총리는 사실을 방관해 버리고 수녀원으로 도망가버리죠. 

사실 도망은 아닙니다. 모두가 장면 총리가 수녀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어떠한 이유는 모르지만 장면 총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쿠데타는 성공적으로 기록되어 집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지금 설명 하려 하는 윤보선 대통령 일것입니다. 쿠데타는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또한 잘못된 것이 맞죠. 단, 현 북한 정세를 보면 아시겠지만, 쿠데타라는 것이 결코 쉽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주한민군의 총 사령관인 매그루더는 윤보선 대통령을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 주한미군이 개입된다면, 이 쿠데타를 막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허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윤보선 대통령은 우리나라 문제에 지속적으로 미국의 개입이 것이 싫었던 것인지, 장면 총리를 몰아 내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거절합니다.

윤 대통령의 거절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끌었고, 윤보선 대통령은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죠. 이로써 윤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임기를 마치고 내려온 대통령이죠.


하야 이후의 윤보선 대통령의 행보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시 대선에 출마하여 박정희의 군사 정치를 비판하고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비판할 내용은 아닙니다. 쿠데타가 잘못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의 하야 이후 행동은 모두 정당 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사전에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면, 또 쿠데타를 막고 역사의 잘못 됨을 바로 잡았던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면 이후에 평가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전에 자신의 자리하나 지키지 못하고 무능하게 쫒겨난 왕을 따르는 신하들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잘못이 없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번복되는 희생을 이끄는 박정희의 폭군 정치를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쫒겨나서 뒷북 치고 있는 왕이라면 충분히 자질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대선 재 출마 당시에도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적은표 차이로 졌지만 부정선거의 문제가 있었죠.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의 시작이 모두 윤대통령의 집권 당시 무능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주관적인 사실과 일부 독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쿠데타 이후 박정희가 인조 같은 패턴을 보였으면 지금 한국의 역사는 북한보다 낮은 필리핀 수준의 GDP정도 됬을겁니다. 물론, 더 떨어졌을 수도 있었구요.

하지만 조선 태종이나, 세조와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면서 나라를 더 강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때문에, 반란의 왕임에도 혹된 비평보다는 국가의 판도를 바꾸어 낸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추후에 필요에 따라 작성하도록 하고 지금은 윤보선 대통령의 역사적인 사실과 생가의 모습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 저는 금융학을 전공했습니다. 역사는 재미로 공부하는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의 주관적인 생각과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

윤 대통령님의 생가 및 윤씨 일가의 중심에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최근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서 인지, 물고기는 없었어요. 물고기가 있고 달빛이 연못에 비춘다면, 감성 뿜뿜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최초의 병리학자인 윤일선의 사촌동생인 윤보선의 생가는 윤일선과 생가와 같은 아산시 둔포에 위치해 있습니다. 윤일선 의사의 가옥을 지나면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를 나오죠.

윤일선 가옥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윤일선의 3대조인 윤취동이 차남 윤영열에게 살림을 내주기 위해 지은 집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대문칸은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으며, 해평 윤씨의 일가가 공동으로 쓰는 솟을대문을 이용합니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합쳐져 "ㅁ"자형의 평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안채는 통칸으로 된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한쪽에 안방 및 부엌을 두고 다른쪽에 건넌방을 두었습니다. 건넌방은 대청보다 높은 뒷마루를 두어 변화 있게 구성했습니다. 사랑채는 일부 길게 다음은받침돌 기단도 남아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 입니다.

기둥을 비롯한 목재들이 전반적으로 가늘지만 각 방들이 비교적으로 넓게 꾸며져 조선말 근대 초기 한옥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 풀어서 재 작성 했습니다.


참고로, 이 일가에는 윤씨의 자손들이 실제 거주 하고 있으므로 일부 주거공간이라는 점 아셔야합니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훼손방지를 위하여 건물 내 cctv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를 소중하게 보호합시다. 이집트 피라미드 꼴 내지 말고요.


윤 대통령과 윤 의사의 가옥 외곽으로 작은 공원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자연속에 한옥을 표현한 듯 합니다. 하지만, 근처에 교회들이 있어서 배경을 망치는 것 같습니다. 무교입니다. 코로나 19여파로 교회를 싫어할 뿐입니다.

사실, 역사를 좋아하는 저같은 분이 아니라면 생각 보다 볼것 없다.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가옥을 궁금해 할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다만, 단지 그곳에 갔으면 들려볼만 한 곳이다. 하는 정도입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윤보선 생가에 공사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복원 공사인지 신설 공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부 장소에는 접근이 불가능 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윤보선 가옥은 그냥 가볼만 하다 정도 였습니다. 한번 이상은 또 찾아 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한 시대의 대통령이 주거했던 공간으로 구한말의 가옥 형태를 보존해 놓은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갈일은 없을 듯 하네요. 현충사를 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이 역사 여행지를 추천하지 않습니다.